2014년 1월 21일에 작성한 텀블러 포스트이다.


  • 부제: 철학을 알면 수학이 쉬워진다
  • 저자: 장우석

이 책은 시간순으로 수학철학의 변화를 설명해준다. 그리고 쉽게 접하기 힘든 동양철학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데, 이 점이 굉장히 좋았다.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칸트에 관한 설명과 노자에 관한 이야기로 다음과 같다.

A는 A가 아니다. 그러므로 A이다. (p.56~9)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활약하던 시기와 비슷한 때 중국에는 노자라는 철학자가 있었다. 한자 문명권 사람들의 세계관에 많은 영향을 끼친 그의 사상을 매우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도덕경(道德經) 제1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도올 김용옥 선생의 해석을 따랐다.)
道可道非常道, 名可名非常名
도를 도라고 말하면 늘 그러한 도가 아니다. 이름을 이름 짓는다면 늘 그러한 이름이 아니다.

이 말의 의미는 어떠한 대상을 A라고 규정하면 그것은 더 이상 A가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하늘은 하늘이라고 실체화하여 규정할 수 없다. 하늘은 끊임없이 땅(즉 하늘 아닌 것)과의 교섭으로 인하여 하늘됨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꾸로 보면 땅도 하늘과의 교섭 없이는 땅으로 존재할 수 없다. 이같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것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으며 타의 존재를 전제함으로써만 존재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불교에서도 동일하다. 우리나라의 성철 스님(1911~1993)은 다음과 같은 선시(禪詩)를 남겼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
산이 물이요, 물이 산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파르메니데스[각주:1]가 들으면 화낼 게 분명한 이 말은 동일률(A는 A이다)을 정면으로 거부한다. 우리의 감각은 산은 산으로, 물은 물로 본다. 하지만 어느 순간 산이 더 이상 산이 아니고 물이 물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온다. 물 없이 산만 있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산 없이 물만 있을 수 없다. 즉 산과 물이 각자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전제로 해서만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이 순간 산과 물은 하나가 된다. 따라서 산이 곧 물이고 물이 곧 산이다. 이러한 산과 물의 관계적 실상을 깨달았을 때 산은 더 이상 과거의 산이 아니고 물도 더 이상 과거의 물이 아니다. 산은 산이라는 실체성을 벗어날 때만 산일 수 있으며 물은 물이라는 실체성을 벗어날 때만 물일 수 있다. 마지막 문장은 이러한 깨달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전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간단히 공식화할 수 있다.
A는 A가 아니다. 그러므로 A이다.

일본의 불교 철학자 스즈키 다이세쓰(鈴木大拙, 1870~1966)는 이것을 일컬어 즉비의 논리라고 하여 “A 卽非 A, 是名 A”로 구조화하였다. 이렇게 용어를 만들어 공식화시키니 신비하고 이상한 논리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이는 사실상 이 세계가 단순하지 않고 매우 복잡한 연관관계로 얽혀 있기 때문에 어떠한 사태를 그 사태만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전체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이다.

우리 동양인들은 일상생활에서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존재론적 논리보다는 노자의 관계론적 논리를 더 선호하고 그만큼 더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 같다. 노자의 이러한 즉비의 논리는 이후 장자(莊子, BC 369~289?)의 만물일여(萬物一如)의 논리로 발전한다.
  1. 변하지 않는 것만을 진정한 존재로 보는 관점을 가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