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1일에 작성한 텀블러 포스트이다.


  • 원제: Journey Through Genius
  • 저자: William Dunham
  • 역자: 조정수
  • 출판: 경문사

수학의 역사에서 뛰어나게 아름다운 증명을 저자가 선별하여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한다. 지루하게 느껴질 틈이 없을 정도로 짜임새가 좋아서 책이 조금 두껍지만, 금새 읽을 수 있다. 또 사이사이에 흥미로운 주변 이야기가 잘 버무려져 있어 쉬어가며 읽을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주요한 특징은 저자의 개인적이라고 하기엔 매우 합리적인 생각들이다.

무려 3년전에 읽은 책이지만, 지금까지도 수학사에 관한 책 중에서는 으뜸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실 수학사 책을 많이 보진 않았다.) 3년전에 읽을 당시에는 번역도 매우 자연스러웠던 것 같다.

어찌됐든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은 당시에 밑줄 친 부분이나 책갈피로 표시한 부분들에서 느껴지는 감흥이 당시보다는 덜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다시 보니 또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인상깊은 구절들이 있어 발췌해봤다.

자살하지 않을 만한 이유 (p.9)

뉴사우스게이트로 이어지는 들판으로 나 있는 좁은 길이 있었는데 혼자 그 곳에 가서 일몰을 구경하며 자살을 생각하는 것이 습관처럼 되어버렸다. 그렇지만 자살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수학을 더 알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받아들여야 할 때 (p.79)

유클리드가 많은 것을 증명했다고 들었고, 그가 이 증명들을 공리로부터 시작했다는 사실에 나는 많이 실망했다. 처음에 형이 그런 식으로 증명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에 대한 타당한 이유를 나에게 대지 못했을 때 그 공리들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런데 형이 '네가 이 공리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더 이상 공부를 해나갈 수 없어'라고 했다. 그래서 난 마음이 내키지 않았지만 계속 더 배우고 싶어서 이 공리들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유클리드에 대한 신선한 평가 (p.120)

그렇지만 다른 기하학의 발견은 최종적으로 볼 때 유클리드의 명성을 훼손시켰다기보다는 향상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다른 자명한 공준과 공리로부터 이 평행선 공준을 증명하려고 했고 아는 바와 같이 결국에는 실패했는데, 유클리드는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그 대신, 공준으로서 꼭 있어야 할 자리에 단순히 그것을 놓아두었을 뿐이다. 유클리드조차도 2000년 뒤에 다른 유형의 기하학들이 발견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수학자로서 직감에 따라 평행선에 관한 이 성질이 아무리 길고 복잡해보이더라도 다른 것과는 분리되고 독립된 공준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의 이 직감은 22세기나 지나서야 수학자들에 의해 처음부터 모든것이 맞았다고 입증되었다.

극한의 정의에 관한 역사 (p.436~7)

'극한'이란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는작업은 아주 힘든 일이었는데, 그 이유는 이 개념이 사고의 정밀함과 까다로운 실수 체계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요구되는 아주 깊은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학자들은 이 어려운 극한의 개념을 조금씩 정복해갔다. 1821년경 프랑스의 수학자 코시(Augustin-Louis Cauchy, 1789~1857)는 극한에 대해 다음과 같은 정의를 제안했다.
어떤 특정한 변수에 의해 연속적으로 생기는 값들이 고정된 하나의 값으로 무한히 접근해가서 결국에는 원하는 만큼 아무리 작은 값을 택하더라도 이 고정된 값과 다를 때, 이 고정된 값을 이 접근해가는 모든 수들의 극한이라고 한다.

코시의 이 정의는 '무한히 작은'과 같은 부정확했던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코시는 이 변수의 값들이 극한에 도달하는 그 정확한 순간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결정하는데 구속될 필요가 없었다. 이 정의에는 죽은 양들의 유령도 없었다. 대신에 코시는 한 고정된 값이 한 변수의 극한이라 함을 이 변수와 극한의 차를 우리가 원하는 만큼 작게 할 수 있음을 의미했다. 이것을 소위 코시의 '극한 회피적' 정의라고 하는데, 코시는 이렇게 극한을 정의함으로써 극한에 도달하는 순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한 철학적 난제를 제거할 수 있었다. ⋯⋯ 중략 ⋯⋯ 그렇다고 해도 여전히 코시의 정의는 정확성을 요하는 손질이 필요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하나의 변수가 극한에 '접근'한다는 표현을 사용했는데 이것이 어떤 움직임을 의미하는지 분명하지 않았다. 점들이 움직여서 서로 접근한다는 직관적인 생각으로 이 움직임을 이해해야 한다면, 코시가 말한 움직임에 의한 극한의 이해가 '극한' 자체에 대한 직관적인 이해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는가? 둘째로 코시가 사용한 '무한히' 라는 용어도 명확하게 보이지 않으므로 역시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마지막으로 극한에 대한 코시의 정의는 너무 장황하기 때문에 이 정의에 있는 단어와 어구들을 분명하게 정의하여 모호함이 전혀 없는 기호로 대체할 필요성이 있었다.

보고도 믿기 힘든 발견 (p.472~5)

칸토어는 (0, 1)이라는 1차원 구간의 기수인 c보다 더 큰 기수를 찾는 열쇠를 x축 상에서 (0, 1)의 구간을 잡고 y축상에서도 (0, 1)의 구간을 잡아서 만든 2차원인 정사각형에서 찾으려고 했다. 1874년 1월, 친구이던 데데킨트(Richard Dedekind, 1831~1916)에게 쓴 편지에서 칸토어는 이들 두 집합, 즉 (0, 1)인 구간과 정사각형 사이에 일대일 대응을 줄 수 있는지를 물었다. 칸토어는 2차원인 정사각형과 1차원인 선분 사이에는 일대일 대응이 존재할 수 없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2차원인 정사각형이 1차원인 선분보다 훨씬 더 많은 점을 포함하다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이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칸토어는 이 사실이 너무 분명했으므로 '증명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렇게 증명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분명했던 사실에 대한 증명은 결코 성공하지 못했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시도했지만 결국 이 구간과 이 정사각형 사이에는 일대일 대응이 존재할수 없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실패했다. 그러다가 1877년, 칸토어는 원래의 직관이 완전히 틀렸다는 것을 발견했다. 직관에 의한 판단과는 달리 그러한 일대일 대응 존재했던 것이다!

⋯⋯ 중략 ⋯⋯ 이 논의는 비록 차원이 서로 다르더라도 정사각형에 있는 점이 구간에 있는 점보다 더 많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한 것이므로 이들 두 집합은 같은 기수 c를 가진다. 이 사실은 놀라운 발견이었다. 데데킨트에게 보낸 1877년의 편지에서 이 발견에 대해 칸토어는 "보고 있으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