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23일에 작성한 텀블러 포스트이다.
- 제목: 학문의 즐거움
- 원제: 学問の発見
- 저자: 広中平祐 (ひろなか へいすけ)
- 역자: 방승양
- 출판: 김영사
가설 연역적 사고 방식 (p.118~9)
이 '가설'에 대해서는 서양 사람과 일본 사람의 사고방식이 상당히 다르다. 서양 사람은 먼저 가설을 세우고 나서 연역(演釋)하는 방법으로사고한다.
나는 미국 학생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 "자네들은 지금 어떤 것을 연구하고 있나?" 그러면 그들은 우선 자기가 세운 가설을 설명한다. 그런데 같은 질문을 일본 학생에게 하면 대부분이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대수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또는 "기하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미국 학생들의 사고방식은 먼저 가설을 세워서 그것으로부터 여러 가지를 연역해 보고, 안 되면 그 가설을 바꾸면 된다는 식이다. 반면에 일본 학생들은 무언가를 먼저 공부해 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논문을 써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이 시시해지면 방향을 바꾸거나 지금까지의 방법을 개선하는 식의 연구 태도를 가지고 있다.
가설을 세우는 일은 어떤 뜻에서는 용기를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수학의 분야에서건 물리의 분야에서건 처음에 세운 가설은 대부분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징크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설을 세워서 열심히 연구하는 사이에 생각하지도 않았던 발견이 생긴다. 따라서 나는 잘못된 가 설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뜻에서 젊은 독자 여러분이 앞으로 창조적인 일을 하려고 한다면 가설을 세워서 연역하는 사고방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권하고 싶다.
논리적인 분석 (p.121~2)
어떤 철학자가 지적하는 바에 의하면 서양 사람은 한 가지 문제가 있으면 그것을 여러 가지 요소로 나누어서 모든 각도에서 철저히 알아본다. 이에 반해 동양 사람은 한 가지 문제가 있으면 그것과 비슷한 문제를 자꾸 모은다. 그리고 큰 지혜 보따리 같은 것에다 계속 집어 넣는다. 얼마 후 그 보따리는 우주만큼이나 커지고, 따라서 그 내용에 관한 논쟁도 우주적인 논쟁이 되어 처음의 문제 따위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고 한다.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재미있는 지적이라고 생각된다.
분석 방법에는 크게 나누어서 상징적인 분석과 논리적인 분석이 있다. 상징적인 분석이란, 사람에게 육체와 영혼이 있다는 것을 하나의 상징으로 설정하여 거기서부터 생각해 나가는 분석이다. 이 분석법은 약간 모호한 점이 있지만 어느 정도의 분석을 통하여 전체 모습을 잡으려고 하는 방식이며, 대체로 동양 사람이 잘 하는 방법이다. 논리적인 분석은 일단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요소를 결정하여 그것을 조립해 가는 방식이다. 이 분석의 단점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무시하거나 포기하기 때문에 결국에는 전체 모습을 잡지 못할 수가 있다는 점이다.
耳學 (p.206~7)
일류 대학의 학생이라면, 이 이학(耳學)만으로 단기간 내에 상당한 수준까지 배울 수가 있다. 가령 3,4백 페이지 분량의 책에 씌어진 내용을 배우려고 할 때, 학생은 교수에게 가서 "이 책에는 무엇이 씌어져 있습니까?" 하고 일본의 대학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질문을 한다. 다소 유치하고 대략적인 질문이지만, 질문받은 교수는 그에 대해서 학생에게 열심히 설명한다. 그러면 그 설명에 대해서 또 질문하고 그것을 몇 시간에 걸쳐서 되풀이하는 동안에 학생은 그 책의 요점을 파악해 버린다. 두꺼운 책을 몇 페이지 읽다가 이해하지 못해 포기하는 것보다 질문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좋은 효과를 내는 셈이다. 물론 상세한 부분은 스스로 읽어야 되겠지만, 대체적인 요점이나 골격을 파악하면 책에 대한 이해는 훨씬 빠르다. 1
WHAT? why? how? (p.207)
학생과의 관계에서 자주 경험하는 일인데, 일본 학생은 'why' 라든가 'how' 라고 질문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 말할 것도 없이 'why' 라는 것은 '왜' 라는 것인데, 이것은 '진리'를 물어 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미국 학생은 'what' 이라는 형태의 질문을 많이 한다. "그것은 도대체 무엇이냐?" 라는 식으로 물어 본다. 이것은 사실(事實)을 묻는 것이다. 2
요컨대 일본 학생은 사실의 배후에 있는 진리를 구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why' 라고 묻는 것이 사실만으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 나름대로 훌륭한 질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정보(情報)를 진리로 착각할 때도 있고, 사실을 모르면서 진리라는 말을 혼동하여 자기 만족에 빠지는 경우도 있을수 있다.
한편 사실을 확실히 알지 못하고 출발하는 것도 위험하다. 사실을 통해서 진리를 간파하는 것은 자기의 일이며 딴사람에게 물어서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는 태도도 있다. 어느 쪽이 좋다고 얘기하기는 힘들지만 미국과 일본과는 그러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두는 것도 좋을것이다.
- (역자 주) 귀동냥이라는 뜻으로 저자가 만든 말. 듣고 묻고 토론을 통한 학습 [본문으로]
- 여기서의 사실은 학문적 사실이라는 의미이다. 한편, '배움과 창조에 있어 정말 중요한 것'에서 '사실을 사실로서'의 사실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는 뜻이다. [본문으로]